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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현 회장의 성장배경 및 업적
문주현 회장은 1985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1983년 27세의 나이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해 부동산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특진을 통해서 최연소 임원이 되었지만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었다.
문 회장은 재취업을 고민하다 1998년 서울 서초동에 분양대행업체 MDM을 설립했다.
2007년 첫 시행 사업을 하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등의 주상복합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하고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1998년 IMF때에 부동산 분양시장에서 코오롱그룹 분당 트리폴리스가 완전분양이 되었다. MDM이 처음 했던 부동산개발사업이 트리폴리스 분양이었다.
그 뒤로 서초동 슈퍼필,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분당 현대산업개발, 분당 파빌리온을 하면서 2007년 6000억 규모의 부산센텀시티 월드마크 센텀 시행, 분양은 큰 성공이었다.
문주현 회장은 2010년에서의 한국자산신탁의 인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한국자산신탁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하면서 개발, 마케팅, 컨설팅, 신탁업무를 종합적으로 하는 종합부동산 그룹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개발회사의 부동산신탁회사의 인수는 한국에서 최초였다. 제도권 안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개발사업을 할 수 있었으며 소비자에게 신뢰를 받으면서 다양한 방식의 개발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국자산신탁은 그동안 신탁업계에서도 재무 건전성과 안정적 고객자산관리로 신뢰가 높았다.
그는 이 강점을 MDM의 금융관리, 컨설팅, 마케팅 등의 다양하고 특화한 전문서비스를 제공하여 원활하고 안정된 개발사업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초 오피스텔에 주거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문주현 회장의 발상의 전환으로 신세대 미시족을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으로 붙인 대치동 미씨860오피스텔을 사흘만에 분양을 완료하기도 했다.
문주현 회장의 좌우명은 ‘나눔’이다.
학비 때문에 학업을 접으려 할 때 독지가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때 다짐한 것이 ‘나눔’이었다.
문주장학재단은 2001년 10억 원으로 설립이 되었으며 9년 동안 4억 6000만 원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의 목표는 60세까지 200억 원을 조성해 장학사업과 함께 문화, 예술, 연구 분야도 지원하는 것이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학교에서 우연히 기회가 되어 MDM을 방문하여 문주현 회장님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다양한 관점으로 부동산을 성공적인 개발을 진행하는지와 디벨로퍼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동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많은 생각을 통해 나는 크게 2가지로 장래희망을 정하게 되었다.
하나는 부동산 투자에 관련된 상담사 일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계획기사가 되는 것이다.
실제 성공적인 개발사례처럼 나도 저런 성공적인 투자상담가 또는 계획자가 되고 싶어졌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 ‘부동산에 대한 안목을 길러라’이다.
문주현 회장님의 부동산 개발사례처럼 ‘나도 저런 안목을 가진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개발사례는 경사면이 있는 약점을 광장식 상가로 만든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였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면 경사가 있는 부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을 하는데 문 회장은 생각의 관점을 달리해서 성공적인 개발을 이끌어 냈다.
부동산개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그런 관찰력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어린 시절 어려웠던 상황에도 극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묵묵히 해나갔던 문주현 회장님의 성장배경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문 회장님의 정말 대단했던 점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장학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해주는 점이다.
자신의 대학시절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안목을 믿고 성공적인 개발을 해나간 문주현 회장님을 보면서 나도 저런 큰 인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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